현관문이 스르륵 열리자.
[ 어서 오십시오 · 무사 ]
인공 지능 센서는 알아서 인사를 했다. 집 건물의 보안을 담당하는 ‘아심’이다. 배꼽 아래에서 끌어올린 듯한 중저음의 어투.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못해 단호하게 들릴 정도였다.
[ 외출하신지 2분 13초만에 돌아오셨습니다 ]
무사는 대꾸도 생략한 채 서둘러 작업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급한 손길로 무언가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책상 서랍, 컴퓨터, 커피 머그, 액자, 회전 의자…….
가전 기기 하나하나는 물론이고. 방 구석구석을 손가락으로 싹싹 훑었다.
“왜 다시 온 거야?”
자인이었다. 무사는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지었다.
“왜 — 돌-아-왔-냐-구.”
자인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주 느린 속도로. 무사는 왼쪽 무릎을 세워 몸을 일으켰다.
“으음!”
무사는 빠르게 번지는 통증에 신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오른쪽 무릎이어야 했는데. 현재 그의 왼무릎은 홀로 90킬로그램의 육중한 몸무게를 견딜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또. 깜빡 잊고 말았다. 바보처럼.
“트루디의 말을 들었어야지. 결국은 닥터 파레가……”
“잊고 나간 게 있어서.”
무사는 자인의 말을 툭 끊었다. 자인이 하려던 이야기는 새로운 정보도 뉴스도 아닌.
‘틈만 나면 설교질!’
되풀이되는 조언에 불과했기에.
“다 자란 어른을 내가 가르쳐야 할 이유는 없지. 알아서 해.”
“왜 그렇게 삐딱한 건데?”
“삐딱? 내가 뭘 삐딱하게 말했지? 마흔 살 넘은 남편을 부인이 지도하지 않겠다는 게 삐딱한 거야? 교육은 부모와 학교로부터 받았어야지.”
“자꾸 파고 들 거야? 여기서 교육 얘기가 왜 나와?"
“심사가 꼬여 있는 사람에겐 모든 게 뒤틀려 보이고 들리기 마련이야.”
무사의 양 콧구멍이 넓게 벌어졌다. 그는 입술 밖으로 새어 나오려는 격한 감정을 간신히 삼켰다. 자인은 덥석 문 말꼬리를 절대 놓는 법이 없었다. 투쟁 본능이 강한 핏불 테리어와 똑같은 피가 혈관에 흐르고 있는 것인지. 그녀의 대화법은 종종 무사를 발끈하게 만들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무미건조한 기계음을 닮은 자인의 말투도 적지 않게 한 몫 했다). 자인은 눈앞으로 흘러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환하게 드러난 그녀의 두 눈은. 덤빌테면 덤벼보던지! 하고 가느다랗게 지저귀었다.
“베델!”
무사는 ‘베델’을 호출했다. 가급적이면. 자인의 경멸에 찬 눈초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었다.
[ 굿 모닝 · 무사 ]
특유의 밝고 활기찬 음성. 베델은 집안 일 담당의(청소, 요리, 빨래 등) 스마트 가전 제품을 작동하고 관리하는 인공 지능이다. 무사는 집에 프로그램 되어 있는 의인화된 인공 지능 중 베델을 가장 좋아했다.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상냥하고 유쾌하기에. 더군다나. 베델은 무사의 어떤 요구에도 토를 달지 않았다. 오히려 센스 있게. 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베델, 오늘 저녁으로는 햄버거가 먹고 싶어.’
‘앞서 여덟 번을 식물성 고기 패티를 썼는데, 이번에는 진짜 고기 패티로 할까요?’
‘너무 좋지! 역시 베델이야!’
콜레스테롤 수치와 복부 지방의 상향 곡선을 부르짖거나. 고리타분한 권고를 일삼는 ‘닥터 파레’나 ‘트레이너 트루디’와는 상당히 달랐다. 꽉 막힌 그 둘과 비교했을 때 베델은 유연했다. 무사와 적당한 타협도 곧잘 하고. 심지어 가벼운 농담도 주고 받았다.
“베델, 이 방을 마지막으로 청소한 게 언제지?”
[ 어제 오전 11시 21분이었어요 · 무사 ]
“그렇다면 아직 오늘은 청소를 하지 않은 거지?”
[ 청소는 주말을 제외한 월요일부터 금요일 11시 이후에 한답니다 · 청소 시간을 조정할까요? ]
“아니야. 그냥 확인할 게 있어서 물어본 거야. 평소 스케줄 대로 해.”
[ 그럴게요 · 무사 ]
“뭘 찾고 있나 봐?”
“신경 꺼.”
무사는 음침하게 다가오는 자인의 물음에 이마를 찌푸렸다. 쾌청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내려앉는 것처럼. 그의 기분이 쭈글쭈글 금세 암울해졌다.
“남편의 타락한 정신 상태를 알아버렸는데 신경을 끄라구? 난 당신의 부인이야. 추락하는 한 인간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자격이 있어.”
“우우우욱!”
끙끙 앓는 듯한 소리가 무사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는 양주먹을 불끈 쥐고 방안을 이리저리 종횡했다. 반면. 무표정한 자인의 얼굴에는 야릇한 온화함이 감돌았다. 그녀의 번뜩이는 두 눈은 씩씩거리는 무사의 움직임을 조용히 뒤쫓았다.
“타락? 추락? 벌써 아이시스의 주의를 잊은 건 아니겠지!”
“하! 설마.”
자인과 무사의 부부 싸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던 작은 다툼은. 해를 거듭할 수록 격렬한 언쟁으로 발전했고 그 횟수도 부쩍 잦아졌다. 그렇다고. 둘 사이에 딱히 큰 분쟁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성격 차이’를 핑계 삼아 서로를 헐뜯고 씹어대다 보니. 지켜야 할 선이 와르르 무너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둘은 ‘부부 상담 치료’라는 종착역에 다다랐다.
자인은 입고 있던 스웨터의 왼쪽 소매를 쓱 걷어올렸다. 그녀의 손목 위로 복잡한 회로 모양의 금빛 타투가 드러났다. 7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문신은 신체에 부착할 수 있는 스티커형었다. 이 비영구 타투는 피부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화학 물질을 체내에 침투시켰다. 최근. 의료계에서 출시한 가장 획기적인 아이템 중 하나로. 맞춤형 건강 관리를 맡은 인공 지능인 닥터 파레가 스트레스에 취약한 자인에게 추천한 약품이기도 했다.
자인은 팔에 붙은 회로 디자인을 찬찬히 살폈다. 전체적으로 금색인 회로는 드문드문 회색이 섞여 있었다. 점과 점을 잇는 라인 하나를 골라서 손가락으로 문지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금줄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굳었던 목과 어깨 근육이 서서히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입으로 내쉬었다.
“닥터 아이시스야. 우리의 상담 치료 전문가라고. 내일 세 시. 잊지마.”
눈을 뜬 자인은 소매를 당겨 내렸다. 그리고 무사의 작업실에서 나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