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원숭이 조련사 (5)

“책 어땠어요? 신비하고 다채롭죠?”

만나자마자. 그녀가 쪼르르 달려왔다. 못보던 사이에. 다소 핼쑥해진 것도 같았다. 나는 눈길을 떨어뜨렸다. 그녀의 옆구리에 단단히 끼어 있는 퍼즐 책이 보였다. 얼마나 풀어댄 것인지. 책 가장자리가 나달나달했다. ‘퍼즐 광’ 정도로는 충분치 않을 듯했다. 요즘 말로 ‘덕질의 끝판왕’ 급은 되었다.

“복잡한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느낌 아니던가요? 나름 긴장감도 흐르죠? 스릴러물도 아닌데.”

아니나 다를까.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괜찮았어. 좋은 책 추천해 주어서 고마워.”

차마. 완독하지 못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경쟁이라도. 질 수 없었으니까. 결단코. 

“정말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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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대한 짧고 명확하게 응답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하게 크래커에 치즈를 얹어 먹었다. ‘대화 단절’의 의지를 시사하는. 나의 배려였다.

“그런데 저스틴 브라우닝, 제대로 쓰레기 아닌가요?”

나는 입 속에서 뒹굴던 크래커와 치즈를 꿀꺽 삼켰다. ‘예스’라고 해야 할지, ‘노’라고 해야 할지. 혀끝에서 에돌기만 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토록 입 아프게 알려 주는데도, 반성이란 없잖아요.”

“으흠!”

나는 헛기침으로 목청을 가다듬었다.

“옆에서 눈 뜨고 당하기만 하는 인물들이 너무 안쓰럽고 딱하더라구요.”

“그치…….”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입을 닫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 했다.

“나한테 걸렸으면, 진작에 게임오버였을 텐데. 이래 뵈도 내 분야에선 킬러로 통하거든요.”

왜 그랬을까. 별안간. 소설 속 구절이 물결처럼 너울거렸다.

엘렉트라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녀의 빨려들어 갈 듯한 커다란 눈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눈을 들어 그녀를 흘겨보았다. 지금. 내 앞에 떡하니 앉아 있는. 그녀의 눈과 몹시 흡사했다.

“전부터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많이 궁금했잖아요. 인간 체험. 이젠 아셨죠? 별 거 아니에요.”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그녀는 몸을 푹 수그렸다. 그리고. 내 귓가에 입을 대고 소곤소곤 속삭였다.

“저스틴 브라우닝. 백만 년 만에 재회한 쌍둥이 형제 같지 않은가요? 상봉을 축하해요. 내가 찾아내느라 힘 꽤나 썼어요. 당신의 과거와 미래를 수도 없이 들쑤셔야 했거든요.”

“무, 무슨…….”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장난질 금지. 구어체로 깩소리 말고 얌전히 있으라구요. 이혼 후 쪽박신세 되는 거에 안 그치고, 하나뿐인 아들까지 잃고 싶지 않으면 말이에요.”

그녀는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마치 독이 오른 벌레의 울음소리 같았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휙 틀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말도 목구멍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혓바닥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온갖 노력을 다 하셨던데. 우와, 깊은 감동. 그런데 어쩌죠? 나 못 이길텐데. 말했잖아요. 나 킬러라고. 미래에서 온 나르시시스트 킬러. 그러니까 비행 원숭이 조련사 짓은 빨랑 접으세요. 잘 알아 들었죠, 미스터 나르시시스트?”

“…….”

나는 벙어리 행세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놀란 비둘기처럼. 벌떡벌떡 뛰는 가슴을 가라앉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망이질을 해대는 어리석은 심장은. 좀처럼 잔잔해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돌연히 발생한 상황에. 사지마저 달달 떨렸다.

“아 참! 말한다는 걸 까먹고 있었는데, 그 책 내가 썼어요. 어때요? 이젠 앞뒤 아귀가 귀신같이 맞아떨어지죠?”

그녀는 퍼즐 책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겼다. 겉표지에 큼지막하게 박혀 있는 <나르시시스트 정복>이라는 제목이. 나를 향해 히죽히죽 비웃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