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원숭이 조련사 (3)

나는 심사숙고 끝에. 

첫 번째 포장지를 엄선했다. ‘겸손’이라는 딱지가 붙은 포장지였다. 색상도 무채색으로 정했다. 그녀와 ‘코드’를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오래된 습성에서 나오는 사회적 행동이 아니던가. 

“어제 난 기사 보니까 수상 후보에 올랐던데?”

“으응…….”

“와! 대단하다!”

“뭐가. 그깟 상. 다 주는 건데.”

“아무나 막 주겠어? 그래도 상인데.”

“아냐.”

나의 반응이 시큰둥할 수록. 식구들은 더 크게 떠들어댔다.

“상금 있어?”

“그런 거 없어.”

“에이, 아무려면!”

“없다고.”

나는 잘라 말했다. 돈에 관한 주제라면. 싹눈부터 뜯어 내야 했다. 돈도 없었지만. ‘가난한 예술가’라는 프레임을 벗어던질 단계가 아니었다. 멀고도 멀었다.

“얼마나 주니? 그래도 한 돈 백은 주겠지? 야, 뭐든 보상이라는 게 있어야지. 니가 얼마나 고생해서 하는 건데.”

그러나. 눈치 없는 어머니는 멈출 줄을 몰랐다. 머릿속에 돈꽃이라도 만개한 것인지. 허구한 날 돈타령이었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턱에 힘을 꽉 주었다.

“오늘 저녁에 뭐 해 먹을까요?”

일명 ‘개코’의 소유자인 와이프가 수습에 나섰다.

“글쎄, 맛있는 게 뭐가 있을까?”

“아무거나.”

“나도 상관 없어.”

“나도.”

언제나 그렇듯. 간단한 결정 하나 내리지 못하고. 떠넘기기 바빴다. 결정장애. 우리 식구의 화끈거리는 민낯이었다.

“만두 어때요? 손만두. 만들어 본 적은 없는데, 재미있을 거 같아요.”

내내 심드렁한 얼굴로 앉아 있던. 그녀가 작은 입을 오물거렸다. 

‘그렇지! 잘 한다!’

깔끔한 결단력. 앞으로. 내 공식에 꾸준히 대입해야 하는 ‘수치’였다. 그러면. 근사값을 쉽게 구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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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견이 적중했다. 생각보다 순진한 그녀는. 판만 깔아 주면 알아서 척척 움직였다. 더불어. 결정장애로 중무장된 식구들은 그녀의 지휘봉에 자연스럽게 휘둘렸다. 손 끝 하나 대지 않고 코 푸는 맛이 쏠쏠했다. ‘리더’의 계급장을 단 그녀는. 내가 그려넣은 발자국을 따라 고분고분 스텝을 밟았다. 만물의 이치를 글로 배운. ‘헛똑똑이’의 표본을 보는 듯했다.

“처음 치곤 굉장한데?”

“그래요?”

“소질을 타고 난 것 같아.”

“정말요?”


큰 그림의 완성을 위해서는. 칭찬을 처발라야 했다. 그녀가 나를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완벽하게 인정할 때까지. 고삐를 늦추어선 안 될 일이었다. 다시 말해. 암묵적인 협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우주의 순환 법칙엔 일방통행이란 없지!’

나는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시없는. 절호의 기회일 수가 있었다. 시험 가동 삼아. 어리바리한 동생 녀석을 타겟으로 삼았다. 

‘어차피 나의 영원한 기니피그야. 어쩌면 그것이 네 인생의 참된 목적일 줄도 모르지. 알겠냐, 동생아?’

참된 목적. 이미 동생의 잠재 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가 11살. 동생이 8살 때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 나는.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안 들어 가고 뭐 해?”

“엄마 없어. 문도 잠겼어.”

“그래? 곧 돌아오시겠지.”

나는 가방을 벗고 현관 앞 계단에 앉았다.

“형…….”

“왜 그래?”

“나 똥 마려.”

“참아.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잖아.”

“급해. 쌀 거 같아.”

그 순간. 머릿속에서 번쩍하는 발상이 솟아올랐다.

“그래? 할 수 없지. 가방 이리 주고 저기 가서 싸.”

나는 손가락으로 옆집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보면 어떡해?”

“내가 여기 앉아 있는 한 길에선 너 안 보여.”

“진짜?”

“배우지 않은 넌 모르겠지만 원근법이라는 게 있어. 하여튼 안 보이니까, 걱정 말고 가서 싸.”

내 말을 ‘주님의 말씀’처럼 믿은 동생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옆집 앞에 자리를 잡고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똥을 쌌다. 

30년도 넘은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엉터리 ‘원근법’이 통할 줄이야!’ 

나는 솟구치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머지않아 마흔 줄에 들어서지만. 예나 지금이나 동생은 한결 같았다. 내가 하는 말이라면 맹목적으로 믿었다. 쳐 놓은 덫에 걸려든 줄도 모르는. 미련한 멧돼지 같았다. 즉. 실천으로 옮기는 과정에 있어 막힘이 없었다. 복이라면 복이고.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더욱 확실한 것은. 나는 어릴 적부터 ‘깜냥이 있던 놈’이라는 진리였다. 

나는 테스트에 박차를 가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동생 앞에서 아티스트의 그윽한 내면을 연기했다.

예술적 고뇌, 불안한 미래, 불합리한 사회 구조…….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철학적으로 접근하려고 애썼다. 마침내. 주 5일 출퇴근의 대가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동생 녀석이. 꿈틀하기 시작했다. 

‘브라보!’

녀석의 폐부에. 예술의 혼을 흠씬 불어넣을 틈새가 보였다.

“넌 은퇴하면 뭐 할래?”

“글쎄……. 모아 놓은 은퇴 자금이나 타서 먹고 살겠지. 가끔씩 골프나 치고.”

“남들과 똑같이 먹고, 싸고, 자고, 놀고. 그런 인생 의미없다. 우리가 그러려고 태어난 게 아니거든.”

“형, 안 그래도 요즘 갑갑해.”

“뭔데 그래? 말해 봐.”

동생 녀석은 직장인이 겪는 답답함을 호소했다. 봉급생활자의 무기력증과 우울감에 대해 토로했다.

‘똥방구 끼고 앉았네! 니가 돈 없는 게 뭔지 모르는구나!’

절절한 헛소리에.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그래도. 인내심으로 버텼다. 시작부터. 신성한 설계도에 똥칠을 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동생의 허파는 풍선처럼 팽팽해지고 있었다. 이쯤이면. 거의 넘어오고도 남았다. 그러나. 나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왜냐. 동생 녀석 뒤에는 항상. 그녀가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이트 컬러의 비애이지.”

“화이트고 블루고 간에, 어쩔 땐 확 도망치고 싶어.”

‘빙고!’

동생 녀석은 은연 중에. 해방과 탈출을 부르짖었다.

“자유롭고 싶구나.”

나는 곧장 ‘설교’에 착수했다. 주옥같은 복음의 나팔수를 자청했다. 주제는. 인간 세계의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이었다. 

무위자연설, 관심의 법칙, 힐링 에너지, 양자 물리학, 고차원의 세계…….

알아먹든 말든. 동생 녀석의 막귀에 꾸역꾸역 쑤셔 넣었다. 사고의 규격화를 위해서는. 주입식 교육만큼 알맞은 것이 없었다. 말할 것도 없이. 내가 정한 표준에 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동생은 사직서를 던지고 회사에서 나왔다.

“꼬박꼬박 월급 타 먹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 왜 그걸 걷어차고 나와!”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려고 그랬대?”

“요즘 같은 때 외벌이로는 못 살아. 맞벌이를 해도 죽겠는 판국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런 거야? 옆에서 꼬드기는 친구라도 있었던 거 아냐?”

식구들은 제각기 앞다투어 한마디씩 해 댔다. 여하튼. 도움이 되질 않았다. 깽판이나 치지 않으면.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는 눈을 돌렸다. 그녀는 떠들어대는 식구들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아무 감응도 없는 듯. 시종 무표정했다. 흔한 추임새조차 넣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던 그녀가. 드디어 침묵을 깼다.

“백 세 시대 잖아요. 직장 생활이 영원한 것도 아니고. 평생 직업을 미리 찾는 게 현명한 걸지도 몰라요.”

과연. 명대사였다.

‘아멘!’

공을 들인 효과가 있었다. 그녀의 호감을 샀을 뿐만 아니라. ‘신뢰’와 ‘신망’ 등의 찬양이 남발하는높은 평가가 매겨졌음이 틀림없었다. 대단히 고무적인 출발이었다. 

‘협상이 이런 거야. 내가 널 우쭈쭈 해 주면, 넌 나를 곧이곧대로 신봉하는.’

나는 살그머니 쾌재의 미소를 띄워 올렸다. 속사정까지 일일이 알 수는 없어도. 동생의 탈선을 그녀가 받아들였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포용성에 경의를 표했다. 또한 그 관용과 이해는. 그녀의 고액 연봉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다시금 확신할 수 있었다(‘죄책감’ 따위는 상실해야 했기에. 튼튼한 가정 경제는 절대 전제 조건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