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동생 녀석과 그녀는 결혼을 했다. 꽤 성대한 결혼식을 치뤘다. 약혼 여행으로는 성에 안 찼는지. 신혼 여행도 유럽으로 갔다. 돌아와서는 차도 샀다. 그것도 중형차였다.
‘월세 주제에 무슨 차야? 분수를 알아야지!’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집도 장만했다. 인생 선배의 ‘가르침’을 무색하게 했다. 모든 게 내 기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얼마나 버냐?”
“그냥, 뭐…….”
쉽사리 입을 열 분위기가 아니었다.
“억 대는 버나 보지?”
“일 오래 했잖아.”
나도 내 분야에서 20년 이상은 굴렀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겠지만. 경력의 길이와 돈벌이는 별개의 문제였다. 동생 녀석의 우물거리는 꼴을 보아. 벌이가 괜찮은 게 분명했다.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나에게는 중요한 사안이었으니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눈엣가시처럼 거슬렸던 것은. 동생의 행색이었다. 누가 봐도 특징이 없고 무난하던. 동생의 외모에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출발은 헤어스타일이었다. 밋밋한 회사원에서 반 연예인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예술인이라는 명분 아래 단발머리를 고수하던 나는 혀를 깨물어야만 했다.
동생의 일탈은 계속되었다. ‘튀는’ 옷도 과감하게 입기 시작했다. 스키니진은 물론이고. 특이한 디자인도 너끈히 소화했다. 심지어. 양말도 알록달록한 것들로 바뀌었다. 거무죽죽 걸레 같은 면양말만 신던 녀석이! 이후. ‘탈평범’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내 옷들은. 한순간에 누더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라더니. 라는 옛 속담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동생 녀석은. 정상 궤도에서 이탈해 껑충껑충 날뛰었다.
상향 조정된 동생의 스타일 때문이었을까. “동생 분이 멋지시네요.”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30년이 넘도록. 들어 본 적이 없는 언급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세련된 멋쟁이는. 언제나 ‘나’였다. 그런데. 역전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런 옷은 어디서 사는 거냐?”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동생 녀석을 붙잡고 물었다.
“몰라.”
“몰라?”
“사서 주면 입는 거라서 난 몰라.”
‘인간 체험’이나 파는 줄만 알았다. 패션이나 스타일링에 소질이 있는 줄이야.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입는 옷은 검정색이나 회색이 대부분이었다. 그 옷이 그 옷 같았다.
‘대리 만족이야, 뭐야?’
내 궁금증이 까딱거렸다. 와이프를 조종해서라도 알아내고 싶었다.
“주말에 같이 쇼핑이라도 가지 그래?”
“쇼핑이 세상에서 젤 싫대.”
“엥?”
“붐비는 곳에 가는 걸 싫어하더라고. 완전 집순이야.”
집순이.
와이프는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철마다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사람이 집순이라니. 집구석에만 박혀 있는 사람 치고는 여행을 무척 즐기는 듯했다. 도무지 사리에 맞지 않았다. 와이프의 도움이 더 필요했다.
“주말에 할 일 없으면, 이 기회에 우리랑 교회라도 같이 가자고 해 봐.”
“무신론자인데 가겠어? 그리고 주말에 바쁘대.”
집안이 불교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이롱불자’ 정도로 여겼다. 무신론자.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낌새 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신은 존재하나요?”
“당연하지. 그 분은 나와 항상 함께 하시니까.”
“그렇군요.”
초롱초롱 빛나던 그녀의 두 눈.
그때도 같은 눈빛이었다. 꿈틀거리는 나의 내장을 칭칭 동여매는. 살벌한 눈빛 말이다.
‘이럴 때일 수록 침착하게!’
나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옛 실력을 발휘해야 할 시간이었다. 새로운 인물을 위한. 포장 작업을 해야 할 타이밍. 다만. 포장지 선택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너무 화려해도, 그렇다고 너무 칙칙해도 안 되었다. 옷입기의 난위도 중 으뜸이 비지니스 캐주얼이라고 하지 않던가. 비슷한 맥락이었다.
예술가가 지녀야 할 덕목 중 하나를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분위기’를 꼽았다.
재능, 창의력, 소통, 독창성…….
모두 개소리였다. 서로서로 베껴대는 것도 모자라. 자가 복제까지 서슴치 않는 세상이 아닌가. 실상은 ‘카피’지만. 그럴듯하게 ‘영감’라고 꾸며 댄다고 할 수 있겠다(과장, 반복, 점층, 열거, 대조, 미화 중 제일이 ‘미화법’이다). 따라서. 예술가라면 안갯속에 갇혀 있는 것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를. 적절히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운’까지 덧붙여 진다면. 베스트 시나리오였다.
잊고 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나의 ‘마력’에 도취되어 흐느적거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후훗! 내 희뿌연 속내를 헤아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겠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 파악할 수 없는 사회가. 예인들로 뭉쳐진 공동체이지 않은가. ‘그들만이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 그저 나온 것이 아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