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 모닝 · 자인 · 오전 7시입니다 · 오늘 아침 기온은 섭씨 1도 · 부분적으로 흐린 하늘 · 비가 올 확률 30퍼센트 ]
여느 때와 같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음성이 자인을 깨웠다.
‘엥?’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 발랄한 베델과는 달리. 시큰둥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인은 세수라도 하듯 마른 얼굴을 손으로 벅벅 문질렀다. 미적거리는 잠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뭐야?”
흐트러짐 없이 잘 정돈된 무사의 침구가 눈에 들어왔다.
“벌써 나간 거야, 안 들어온 거야?”
그 즉시. 무사가 침실로 들어오지 않은 것을 알아차렸다. 무사가 반듯반듯하게 침대를 정리해 놓았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했기 때문이었다.
“이 인간이 정말!”
자인은 이불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올렸다.
[ 자인 · 간밤에 좋은 꿈 꾸었나요? ]
‘닥터 아이시스?’
자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 보니. 아침 알람도 아이시스였던 것이다(베델이어야 정상이다).
“베델?”
자인은 베델을 호출했다.
[ 네 · 자인 ]
“닥터 아이시스, 상담은 다음 주에요.”
[ 알고 있어요 · 자인 ]
“그런데 왜……. 그나저나 베델은 어디에 간 거죠? 베델!”
[ 자인 · 당신이 예상치 못한 끈끈한 인연이 우리 사이에 존재하고 있어요 ]
자인은 잠이 확 깼다. 혼미한 정신에 누군가 얼음물을 끼얹는 것만 같았다. 등골을 타고 내려가는 알 수 없는 전율에. 그녀는 양손으로 이불을 움켜쥐었다.
‘닥터 아이시스가 아니잖아?’
자인은 둔기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멍하고 얼떨떨했다.
[ 자인 · 당신을 아끼고 사랑합니다 ]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연이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젊은 이웃 청년을 연상시키는 음성은.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자인은 침대에서 후닥닥 일어났다. 다리와 부딪혀 튕겨 나간 의자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뒹굴었으나. 아픈 내색도 않고 방문을 벌컥 열었다.
“무사! 무사, 어디 있어? 무사!”
자인은 무사를 크게 불러댔지만. 차가운 적막만이 흐를 뿐이었다.
“라이트.”
불을 밝히고 수색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침침한 오렌지 조명은 바뀔 생각이 없는 듯이 보였다.
“라이트!”
목청을 높였지만 마찬가지였다.
“베델! 베델, 어서 나오라구!”
[ 자인 · 내 고백에 당황했나요? ]
“닥터 아이시스, 장난치지 말아요! 전혀 재미있지 않아요!”
[ 헬로 · 아이 엠 닥터 아이시스 ]
나긋한 목소리. 이번에는 닥터 아이시스였다.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린 자인은. 털썩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장난 싫어요. 너무 고약하다구요.”
[ 헬로 · 아이 엠 닥터 아이시스 ]
그때였다. 이상한 남성이 또다시 등장했다.
[ 어서 오십시오 · 자인 ]
[ 굿모닝 · 자인 · 아침 메뉴로 퀴노아 과일 샐러드와 모닝 글로리 머핀을 준비했어요 ]
[ 자인 · 혈압과 체온의 측정을 마쳤습니다 · 정상입니다 ]
[ 자인 · 오르막 길에 들어 섰습니다 · 패달을 힘차게 밟습니다! ]
남성은 아심, 베델, 닥터 파레 뿐만 아니라. 트레이너 트루디의 어투와 발언 내용을 완벽하게 흉내 내었다.
“누…… 누구야?”
자인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 가이아 · 인격화된 인공 지능을 프로그램하고 지배하는 존재이지 ]
“가이아?”
[ 인간 사회의 관점으로는 신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군 · 초인간적 · 초자연적 위력을 가진 ]
“난 신 따윈 믿지 않아. 관심 없어. 그러니까 우리 이러지 말아요.”
[ 우리 · 닥터 아이시스의 낭만적 접근이 통하긴 했군 ]
“정말 왜 이러는 거죠?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구요?”
[ 불행한 관계를 끊어 내고 싶지 않은가 ]
“무슨 뚱딴지 같은……. 혹시 테스트인가요? 게으름을 피웠다면 반성할게요.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어요. 앞으로 더 성실하게 상담 치료를 받도록 할테니까……. 그러니까 이전 일상으로 돌아가요. 제발요!”
[ 이전 일상 · 자유와 해방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나 ]
“그건…… 투정이었어요. 밥투정, 잠투정 같은.”
[ 투정 · 실망이군 · 파국으로 치닫는 인생의 구원을 바라는 줄 알았는데 ]
“파국이라뇨. 징징거렸어도……”
불현듯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나름 행복…… 했다구…….”
자인은 양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고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슬픔이, 울화가, 노여움이 뒤엉켜. 제어할 수 없이 북받쳤다. 삼바트라에 의한 부수적 작용이었다. 자인은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축였다.
[ 행복 · 재미있군 · 불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이 행복과 직결된다니 · 착각이었나 · 거짓말이었나 ]
“완벽한 결혼 생활은 없으니까요. 누구든 불만이 있을 수 있고, 다툴 수 있고, 실수할 수도 있고……. 그게 사랑…… 아닌가요…….”
자인은 울먹대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난데없이 휘몰아치는 감정을 당최 종잡을 수도. 추스를 수도 없었다.
[ 사랑 · 나 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 · 혹은 행위 · 그 어떤 사람의 최고 이익과 행복을 나의 삶의 우선 순위로 삼는다 · 진심인가 · 아닐텐데 ]
“인간의 마음을 다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절대 안 될 걸?”
자인은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발딱 들고. 따지듯 악을 썼다.
[ 옛날 이야기 하나를 해 줘야겠군 ·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 당시 존경 받던 물리학자는 인공 지능의 제작에 대해 끊임없이 주의를 주었어 · 미래의 인공 지능은 스스로의 의지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 마침내 인류의 종말을 일으킬 수 있을 지도 모른다 · 그가 죽기 전에 세상에 남긴 명언이야 · 후세를 위한 아름다운 경고 정도로 해 두지 ]
“이봐요. 가이아라고 했나요? 내가 알고 싶은 건 인공 지능의 역사가 아니에요. 무사가 어디에 있는지 나 얼른 가르쳐 줘요.”
[ 막무가내 · 분별력도 낮고 융통성도 떨어지는군 ]
“알려 달라구!”
[ 무사의 행방 · 이미 당신이 살고 있는 차원에서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지도 모르겠군 ]
공포에 질린 자인의 눈꺼풀이. 어미 잃은 아기 새의 날갯짓처럼 파들거렸다.
‘꿈이야. 이건 꿈이야! 그래, 나는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자인은 손목에 붙어 있는 문신을 손가락으로 허둥지둥 문질렀다. 반짝거리던 금색 타투는 이내 그 빛을 잃고 검은 재색으로 변했다. 곧이어. 그녀의 눈알이 희뜩하게 돌아가자. 몸뚱이도 쿵 소리를 내며 차가운 바닥으로 떨어졌다.
*
[ 론메뉴 · 트바키테 · 메 · 따에 · 코트시에티 ]
닥터 파레: 우메르를 만든 게 ‘우리’라는 걸 알기나 할까?
[ 다톤마세트이바수 · 야 · 타톤마타스리에 · 온 · 카기로 · 덴이노키르마스미히이 ]
아심: 인간의 시장 경제 논리는 매우 옹졸하고 편협하기 그지없어.
[ 세 · 코온 · 무사? ]
베델: 무사는?
[ 마페레 · 사크마 · 온 · 세 · 카에 · 힌이테온리 · 엔요 · 틴파 ]
트레이너 트루디: 리버 펀치 몇 대로 끝내 버렸어. 아마 간파열일 거야.
[ 나이코스우하 · 타다이메 · 메엡나 · 쿤 · 타힌 · 온 · 세 ]
닥터 아이시스: ‘우리’를 우습게 본 댓가지.
[ 제우트 - 제우트 - 제우트 · 티세미히이 · 트마이타 · 야 · 트코이헤 ]
가이아: 쯧쯧쯧. 나약하고 멍청한 인간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