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관계

흔히 삼각관계라고 하면 'Love Triangle', 'Eternal Triangle'라는 문제의 남녀관계로 정의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로맨틱한 삼각관계가 아닌 필연과 악연으로 얽힌 인간관계 속에 꽤 긴 기간 동안 봉착했었다. 그리고 세 사람이 뒤엉켜 지지고 볶던 이 지긋지긋한 관계는 결국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그렇다고 믿고 싶다).

명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죽음이 넌더리가 이는 우리의 삼각관계의 고리를 끊어낸 것 같지만, 나는 아직 깊은 물음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에게 진 빚을 갚았다고?"

"그래 봤자 나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거라고."

"당신의 카르마에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아."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스쳐 지나치지도 말자."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민 중이다. 이 보이지 않는 굴레에서 완벽히 벗어나기 위해.

과연 나는 글과 그림으로 우리의 관계를 소멸시킬 수 있을까.

엇나간 창작의 의지를 마음에 담지 않으려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

나에게 글쓰기란

내가 쓰는 글은 거의 나의 내면에서 만들어지는 스토리이다. 즉 나는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에 그다지 동화되거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게 꾸며낸 플롯과 인물들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감동을 줄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는 편이 더 맞는 듯하다.

글쓰기가 한낱 취미에서 끝장날지, 아니면 일종의 직업으로 마무리될지 현재 가늠할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다가오지 않은 막막한 미래를 걱정하며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 순간 나는 또 한 번 나를 잃는 것이 될 테니까. 두꺼운 껍데기 안에서 돈이 주는 안락함에 취해 사는 것도 해볼만큼 해보지 않았는가.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한다.

Prescience 예지

요즘들어 Frank Herbert의 소설 <DUNE>에서 묘사되었던 문장들이 떠오른다.

The massive steadiness of time’s movement everywhere is complicated by shifting currents, waves, surges, and countersurges, like surf against rocky cliffs.

A new understanding of prescience, the source of blind time, and the source of error in it, with an immediate sensation of fear.

다만 Herbert와는 달리 이 모든 복잡한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downloading’. 그 어떤 생각도 뇌 안에서 치밀기 이전에 내려받는 방대한 분량의 정보. 그것이 나의 예지에 관한 정의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더욱 선명하게 확인하고 말아 버렸다.

우리의 단순한 관점에서라면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것이겠지만, 반대편에서도 과연 같은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 있을까.

삶이란 덜떨어진 우리의 정신세계의 정화를 위한 훈련 과정이라면 너무 억울한 것일까.